[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사위의 대습상속권 인정해야"… 혈족상속 원칙서 벗어나

입력 2018-01-05 17:23  

<34> 사위에 대한 대습상속권 (대법원 2001년 3월9일 선고 99다13157 판결)

정구태 <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 >





대습상속(代襲相續)이란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 또는 형제자매가 상속 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돼 상속권을 상실한 경우, 그 직계비속 또는 그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자의 순위에 갈음해 상속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민법 제1001조, 제1003조 제2항). 이 대습상속제도와 관련, 1997년 8월 발생한 대한항공기(KAL) 괌 추락사고는 사회적으로도 큰 과제를 던졌다. 이 사고로 일가족이 사망한 모 상호신용금고 회장의 상속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막대한 상속재산이 피상속인의 사위에게 대습상속될 것인가, 아니면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에게 본위상속(本位相續: 상속인과 피상속인 사이에 다른 사람을 두지 않고 본래의 순위로 하는 상속)돼야 하는 것인가였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보자. 피상속인 A는 처인 B와의 사이에 딸 C와 아들 D가 있었다. 딸 C는 피고 Y와 혼인해 자녀 E와 F를 뒀고, 아들 D는 G와 혼인해 자녀 H를 뒀다.

피상속인 A는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괌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에는 처 B, 자녀 C와 D, 며느리 G 그리고 손자녀인 E, F, H가 동행했고 사위인 피고 Y는 개인 사정으로 달리 출발하기로 해 같은 항공기에 동승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항공기가 괌에서 추락해 피상속인 A를 포함해 동행한 가족 전원이 사망(동시 사망으로 추정)했고 이로 인해 피상속인 A의 상속이 개시됐다. A에게는 형제자매인 원고 X들이 있었다.

▶‘상속 개시 전 사망’ vs ‘동시 사망’

피고 Y는 피상속인 A의 부동산에 대해 피상속인 A의 대습상속인임을 근거로 상속 등기를 신청했고 이 등기 신청은 수리됐다. 이에 대해 피상속인의 형제자매인 원고 X들은 피고 Y에게 대습상속권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피고 Y 앞으로 완료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했다.

1심 및 2심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 X들은 이에 불복해 ① ‘동시’ 사망의 경우에는 대습상속의 요건(상속 개시 전 사망)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점 ② 피대습자(=피상속인의 딸 C)의 배우자인 사위(Y)가 피상속인의 형제자매(X들)라는 혈족상속인을 배제한 채 단독 상속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점 등을 들어 대법원에 상고했다.

▶“동시 사망 추정되는 경우도 포함”

대법원은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동시 사망으로 추정되는 경우에도 대습상속이 가능하다”고 했다. 원래 대습상속제도는 대습자의 상속에 대한 기대를 보호함으로써 공평을 꾀하고 생존 배우자의 생계를 보장하려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동시 사망 추정 규정도 자연과학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동시 사망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나 사망의 선후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다루는 게 가장 공평하고 합리적이라는 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고 봤다. 따라서 민법 제1001조의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 상속 개시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 상속 개시와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물론 외국에서 사위의 대습상속권을 인정한 입법례를 찾기 어렵고, 피상속인의 사위가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보다 우선해 단독으로 대습상속하는 것이 반드시 공평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고 봤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곧바로 피상속인의 사위가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보다 우선해 단독으로 대습상속할 수 있음이 규정된 민법 제1003조 제2항이 입법 형성의 재량 범위를 일탈해 행복추구권이나 재산권 보장 등에 관한 헌법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외국에서라면 상속법리상 전혀 문제될 것도 없는 위 사안이 세간의 화제가 됐던 것은 우리 민법이 피대습자(=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의 배우자, 즉 피상속인의 사위나 며느리에게도 대습상속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제1003조 제2항). 피대습자의 직계비속, 즉 피상속인의 손자녀에 의한 대습상속은 형평의 원칙에 비춰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피상속인의 인척에 불과한 사위나 며느리에게까지 대습상속권을 인정하고 있는 법제는 한국이 유일하다.

▶대습상속권은 한국이 유일

근대 상속법은 ‘혈족상속원칙’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 ‘상속은 피를 따라 흐른다’는 법언(法諺)이 이를 웅변한다. 물론 피상속인의 배우자에게도 종국적인 권리의 귀속이 인정돼 상속법의 대전제인 혈족상속 원칙을 일정 부분 완화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배우자상속은 혈족상속과는 전혀 별개의 법리에서 이해돼야 할 성질의 것으로 본다면, 상속에서는 여전히 혈족상속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상속법이 피대습자의 배우자인 피상속인의 사위나 며느리에게도 대습상속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피상속인과 피대습자의 배우자 사이 신분 관계는 (혈족이 아니라) 인척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근대 상속법이 공히 인정하고 있는 혈족상속인과 배우자상속인 외에 우리 민법에서는 ‘인척상속인’이라는 또 다른 계통의 상속인이 창출됐다.

▶국민 법 감정 살펴야

그러나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보다 피상속인의 사위가 우선해 상속한다는 결과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 타당성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다. 첫째, 국민 법 감정에 반(反)한다. 현대 법치사회의 법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보편적 법 감정과 건전한 상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법의 존엄성을 상식 이하로 끌어내리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법의 타당성이 일반 국민의 상식에 의해 검증받으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판결에서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보다 우선해 피상속인의 사위가 단독으로 피상속인의 딸을 대습해 상속하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피상속인 딸의 배우자인 사위보다는 자신의 형제자매를 훨씬 가깝다고 본다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둘째, 상속제도의 근거에도 합치되지 않는다. 상속제도의 근거에 관해서 피가 흘러가듯 재산도 혈연으로 맺어진 자에게 전해진다는 혈연대가설(血緣代價說), 사후의 재산 귀속에 관한 유언이 있으면 그에 따르고 유언이 없으면 망자의 의사를 추정해서 법률이 정한 자가 소정의 순위에 따라 상속하는 것이라는 의사추정설(意思推定說) 등이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설(說)에 의하더라도 피대습자의 배우자에게 대습상속권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피상속인이 자신과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형제자매보다 우선해 자신과 ‘인척’에 불과한 사위에게 자신의 상속재산을 물려줄 의사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입법에 의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인척에게 대습상속권을 인정하고 있는 민법 제1003조 제2항은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며느리에게만 적용된 대습상속, 1990년 사위로 확대

민법 제정 당시에는 피대습자의 처, 즉 피상속인의 며느리에게만 대습상속권을 인정했고 피상
속인의 사위에게는 대습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며느리에게만 대습상속권을 인정한 것은 배우자와 사별(死別)한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시부모를 봉양한 며느리에게 피상속인(시부모)이 사망한 뒤에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990년 민법 개정 당시 양성평등에 반한다는 이유로 피상속인의 며느리에게만 인정하던 대습상속권이 사위에게까지 확대됐다. 이는 10여 차례 개정된 가족법 개정 역사에서 유일하게 남성에게 유리하게 개정된 사례다. 그러나 며느리에게든 사위에게든 인척에게까지 대습상속권을 인정하는 것은 혈족에게만 상속권을 인정하는 근대 상속법의 대원칙과는 맞지 않는다.

정구태 <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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